32년간 개천에서 룡들을 키워낸 조선족 시골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2020-09-09 09:59   조회수: 515   중국조선어방송넷  

32년간 개천에서 룡들을 키워낸 시골 선생님

제36번째 교사절을 맞이해 진행된 “2020年度全国教书育人楷模推选活动”이라는 인터넷 행사에서 66명 후보자중의 유일한 조선족인 김영칠이라는 시골선생님의 이야기가 전 중국을 감동시키고있다.

[32년간 편벽한 시골소학교에서 청춘을 불태운 조선족 선생님]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 신방자진 호동구촌, 장백현에서도 또 네시간을 차로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이 편벽한 시골 촌마을에는 자신의 삶을 32년간 아낌없이 불태워 수많은 아이들의 인생의 길을 밝혀준 김영칠 선생님이 있다. 

이름: 김영칠(金永七)

민족: 조선족

출생날자: 1969년 4월10일

고향: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 신방자진 호동구촌(吉林省白山市长白朝鲜族自治县新房子镇虎洞沟村)

졸업학교: 백산시 사범학교

직업: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 신방자진 호동구촌소학교 선생

영예: “장백 좋은 사람” “백산 좋은 사람” “가장 아름다운 향촌 선생님” “전국모범교사” “2020년 전국모범교원” 후보자 등

장백현과 림강시 사이에 위치한 호동구촌은 장백현과 160키로나 떨어져 있고 신방자진과 30여키로의 거리를 둔 길림성에서도 제일 편벽한 변경 시골마을이다. 김영칠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 뻐스도 통하지 않는, 세상과 동떨어진 이 시골에서 어언 32년 세월을 보냈다. 

32년전인 1988년11월, 장백현에서 고중을 졸업한 김영칠은 소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재수(重读)의 길을 포기해야 했던 김영칠은, 호동구소학교에서 대리교사를 초빙한다는 말에 고향인 호동구촌으로 향했다. 

호동구촌에서 태여나 어릴적부터 시골학교의 선생님이 부족한 고생을 겪었던지라 그는 자신을 키워준 마을사람들을 위해 몇년간 선생으로 일하며 보답하려는 마음에서 고향에 다시 돌아왔다.

[머리속이 온통 새하얗게 텅 빈 것 같았습니다. 뭘 강의했는지 자신도 모를 정도였어요. 알아들었냐고 물었더니 다들 고개를 젓더군요.]

첫 강의는 긴장속에서 끝났다. 20살 어린나이에 올라선 강단은 그렇게 어색하고 긴장할 수가 없었다. 반에 제일 큰 아이가 김영칠선생님보다 6살 어릴뿐이였다. 비록 선생님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선생님으로서 마음의 준비는 채되지 않은듯 했다. 

[그냥 조금만 더 견지해 볼까?]

20살 피끓는 청춘이라 편벽한 시골 소학교에서 자신의 일생을 바칠 각오까지는 하지 못했다. 지치고 힘들때마다 “그냥 조금만 더 견지해 볼까”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더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자신처럼 편벽한 시골에서 자라난 시골 아이들이 마을 앞의 큰 산을 넘어 더욱 넓은 세상에서 꿈을 이루게 하자면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길밖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편벽한 산촌에서 더 넓은 세상을 갈망하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려 묵묵히 결심했다. 

그의 학생이였던 종려려는 김영칠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억하고 있다. 

“우리가 놀음에 탐해 시험성적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크게 꾸중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화내지 않고 저희들한테 두 손을 보여주며 저녁에 집에 돌아가 부모님의 손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들과는 다르게 귀 뜨거운 비판이 아닌, 저녁에 부모님의 손을 보라고 말한 김영칠 선생님 말에서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기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매끈한 손과 부모님들의 거친 손을 대비해 보며 종려려는 처음으로 자신의 장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였다. 또 부모님들의 로고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학업에 관심이 없었던 그에게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바로 선생님이 되는 것이였다.

[현재 선생님이 3명 있고 학생은 7+N명 있습니다.]

20살 젊은 나이에 강단에 서서 학생들과 함께 32년이라는 무정한 세월을 훌쩍 걸어온 김영칠선생님, 이미 50고개에 들어섰다. 

“요즘 학교에 학생이 몇명 있나요?” 라는 기자의 물음에 김영칠은 “7+N”이라는 재치있는 답을 주었다. 7은 현재 재학중인 학생수를 가리키며, N은 비록 나이가 어려 학교를 다닐 수 없지만 평소 농사일에 바쁜 가장들 대신 학교에서 돌봐주는 학령전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도시의 일반 소학교들에 비해 학생수는 매우 적지만 김영칠선생님의 로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농사일이 가장 바쁜 봄철과 가을철이 되면 아침 일찍 농사일하러 나가야 하는 촌민들의 뒷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아침해가 떠서부터 저녁해가 질때까지 김영칠선생님은 아이들의 선생님, 부모, 친구가 되어야만 했다.

[힘들지 않습니까? 가장 큰 어려움은? ]

날도 밝지 않은 이른 새벽 일어나 학교를 청소하고 아이들이 마실 물을 끓여 놓고 점심이면 불을 지펴 아이들의 밥을 덥혀 줘야했고 폭우가 내리는 여름에는 아이들을 업고 강을 건느고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는 눈길을 헤가르며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나면 저녁식사 시간도 훌쩍 넘겨버릴 때가 수없이 많았다. 이는 김영칠 부부가 32년간 반복해 온 일상이였다. 

학생들의 집이 서로 다른 마을에 있다보니 김영칠은 매일 저녁 2시간 넘게 산길을 톱아오르며 학생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나면 온몸은 물자루가 된다고 한다.

‘차 한대라도 있으면 좀 편하지 않을가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김영칠은 차를 달리기엔 산길이 안전하지 않고 또 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함께 시도 읊고 신체도 단련할 수 있으며 또 과외지식도 습득시킬 수 있어 지금까지 두발로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을 견지했다고 한다. 

[후회한 적 없으십니까?]

“후회한적 없습니다. 너무 보람차고 행복합니다.” 이는 32년의 인생을 되돌이키며 한 김영칠의 말이다.

사실 김영칠은 안해와 딸을 위해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외국 돈벌이나, 더욱 큰 학교에 전근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같은 교육직에 종사했던 김영칠의 사촌형님이 출국 돈벌이를 떠나는 모습에 마음이 크게 움직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저녁 아이를 마중하러 나온 할머니의 한마디가 그 생각을 접게 했다. “선생님께 애를 맡기면 시름이 놓여요.” 이 말은 김영칠에 대한 촌민들의 긍정이고 또 지금까지 견지해 올 수 있었던 힘이였다. 

[퇴직후 안해와 딸을 데리고 바다구경 가고 싶습니다.]

이는 김영칠선생님이 오래전부터 안해와 딸에게 한 약속이다. 하지만 이는 또 그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한차례 교원강습반에서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안해 륙성영은 아이들한테 열중하는 김영칠의 모습에 감동되여 아무런 불만없이 진중심소학교에서 근무할 기회마저 포기하고 당시까지 전기와 수도물도 없는 호동구소학교에 왔다. 학생수가 적고 또 락후한 교수환경으로 많은 교원들이 이곳을 떠났지만 김영칠 선생님 부부는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 김영칠 선생님에게 있어 안해 륙성영은 훌륭한 내조이자 전우이기도 했다. 

김영칠 선생님과 안해 륙성영 선생님

현재 대학을 다니는 딸을 볼때마다 그는 항상 미안한 감이 앞선다고 한다. 부모가 곁에 없는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해 진소학교에서 숙소생활을 하는 딸의 6.1절 운동회 한번 참가하지 못했고 딸을 데리고 남들처럼 려행 한번 다녀오지 못했다고 한다.

“딸보다 학생들을 더 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딸에게는 많이 미안하죠.” 

[선생님의 키가 아주 컷던 걸로 기억나는데... 어느새 저도 훌쩍 커버렸네요.]

이는 그를 찾아온 제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160cm좌우의 키를 가진 그지만 항상 아이들에게는 앞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거인”이였다. 그는 자신의 어깨로 수많은 시골 어린 아이들에게 지식과 꿈을 실어주고 사랑을 밑거름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동경을 싹 틔워주었다. 

사회 각계의 사심없는 물심량면의 지지,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호동구소학교 어린이들의 유년시절은 아름다운 색채로 어우러졌다. 

현재 호동구소학교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은 어엿한 대학생으로 자라나 자신의 빛나는 꿈을 이뤄가고 있다. 그사이 김영칠은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가 되였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제자들을 보며 지나온 세월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비록 드넓은 세상을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제자들의 눈을 통해 이 세상을 마음껏 누비고 있다며 제자들의 행복한 얼굴들을 바라볼때 선생으로서 가장 행복한 시각이라고 한다. 

“만약 이 편벽한 시골마을에 오려는 선생님이 없다면 계속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김영칠선생님과 그의 “아이”들~

[편집:p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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